기억은 감정을 잊지 않는다, 감정의 디지털화는 가능한가. 감정 없는 기억은 기억일 수 있는가.
우리는 종종 기억을 정보의 저장소처럼 생각한다. 어떤 일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뇌가 고스란히 기록해두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훨씬 더 복합적이다. 그것은 단순한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과 분위기, 몸의 감각까지 모두 포함한 종합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 갑자기 오래전 추억이 떠오르거나, 음악 한 곡이 특정 시기의 감정을 되살리기도 한다. 기억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감정과 연결된 서사다.
특히 강한 감정이 동반된 경험은 훨씬 오래 기억된다. 첫사랑의 순간, 가까운 사람의 이별, 극심한 공포를 느꼈던 순간 등은 수십 년이 지나도 뚜렷하게 남는다. 뇌과학적으로도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는 해마와 함께 기억 형성에 깊이 관여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감정이 강하게 각인된 기억을 ‘잊지 않는다’. 기억은 감정의 흔적을 타고 우리 안에 머문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기억을 대신하려는 시대에, 이 감정까지도 함께 기록하고 재현할 수 있을까? 디지털화된 기억은 과연 인간의 감정을 담을 수 있는가?
1. 감정을 측정할 수 있을까? 기술이 감정을 읽는 방식
최근 인공지능과 바이오센서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감정을 ‘측정’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스마트워치나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심박수, 피부 전도도, 뇌파, 얼굴 근육의 움직임 등을 분석하여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추정하는 기술이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어떤 광고를 보았을 때 사용자의 표정이 변화하는지, 음악을 들을 때 심박이 빨라지는지 등의 데이터를 수집함으로써 사람의 기분이나 정서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AI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행복’, ‘슬픔’, ‘분노’, ‘놀람’ 같은 감정 태그를 붙이기도 한다. 일부 감성 분석 프로그램은 SNS에 남긴 글의 문맥과 어휘 사용을 통해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추정한다. 이렇게 수집된 감정 정보는 마케팅, 사용자 맞춤 콘텐츠, 심리 상담, 정신 건강 관리 등의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있다. 감정은 정말로 이렇게 정량화되고, 범주화될 수 있는 것일까? ‘슬픔’이라고 불리는 감정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문화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같은 음악을 듣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지만, 다른 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기술이 감정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읽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감정 자체인가, 아니면 감정의 징후에 불과한가?
2. 디지털화된 감정은 진짜일까
감정을 디지털로 기록하고 분석할 수 있다면, 그 감정을 다시 ‘재생’할 수도 있을까? 영화 <블랙 미러>에서는 죽은 연인의 SNS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사람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AI를 만들어낸다. 목소리도, 말투도, 감정 표현도 실제 사람과 거의 흡사하다. 하지만 주인공은 곧 깨닫는다. 그 AI는 아무리 똑같아 보여도, 진짜 ‘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는 감정의 디지털화가 갖는 한계와 맞닿아 있다. 인간의 감정은 맥락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 현재의 몸 상태, 사회적 관계, 말의 의도, 표정의 미묘한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하나의 감정을 구성한다. 이 모든 것을 수치로 환산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공기를 병에 담으려는 시도처럼, 감정은 흘러가고 변화하며, 정해진 모양이 없다. 게다가 감정은 ‘느껴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공유되는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와 감정을 나누는 경험은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핵심이 된다. AI가 재현한 감정 표현은 실제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는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다. 표정이나 말투는 흉내낼 수 있어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은 재현할 수 없다.
3. 감정을 기억하는 인간, 감정을 흉내 내는 기계
결국 디지털 기술이 할 수 있는 일은 감정의 ‘기록’이 아니라, 감정의 ‘흉내’에 가깝다. 그것은 마치 배우가 감정을 연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매우 정교하고 섬세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진짜 감정을 느낀 결과는 아니다. AI가 연민의 말을 건넨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로 우리를 걱정하고 있다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상대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단지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기억하는’ 능력 역시 인간에게만 존재한다. 과거의 감정은 고스란히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과거의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마음이 동하거나 차가워진다. 그것이 바로 ‘감정이 기억되는 방식’이다.
기계는 감정을 계산할 수는 있지만, 그 감정을 기억할 수는 없다. 기억한다는 것은 그 감정이 ‘자기 자신 안에 새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새겨짐은 살아 있음에서만 가능하다. 감정은 생명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디지털은 그것을 복제할 수 있어도, ‘살아 있는 감정’은 될 수 없다.
기억은 감정을 잊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이 단지 뇌의 화학 반응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 있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외주화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만큼은, 아직 그리고 앞으로도, 온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술을 통해 감정을 측정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감정의 깊이를 잃게 된다. 감정은 데이터를 넘어서는 인간다움의 본질이다. 그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고, 예측 불가능하며, 때로는 논리적이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모순성과 예측불가능성이 인간의 감정을 아름답게 만든다. 디지털 시대에 감정을 기록하고 싶다면, 우리는 차라리 느린 글쓰기를, 진심 어린 대화를, 오래된 사진첩을 열어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진짜 감정은 스크린 너머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시간 속에 남는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언젠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 다시 깨어나, 우리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