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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기 위해 기록했는데, 기록했으니 잊어도 된다고 믿는다.

by winnie2725 2025. 4. 23.

잊지 않기 위해 기록했는데, 기록했으니 잊어도 된다고 믿는다. 기록의 목적은 '기억하기'였는데, 언제부터 달라졌을까.
기록은 본래 ‘기억하기 위해’ 존재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벽에 그림을 그리며 사냥 장면을 남기고, 일기를 써가며 감정을 담아왔다. 잊히지 않도록, 사라지지 않도록, 누군가에게 전하고자 기록했다. 기억은 흐려지기 마련이고, 기록은 그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장치였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했는데, 기록했으니 잊어도 된다고 믿는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했는데, 기록했으니 잊어도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은 일상의 대부분을 기록해주고, 클라우드는 방대한 사진과 음성을 보관한다. 카카오톡 대화 기록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일정 앱은 지난 달의 움직임을 몇 초 단위로 되짚는다. 우리는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는 태도에서 '기록했으니 잊어도 된다'는 믿음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억은 더 이상 마음속에 담기는 것이 아니다. 버튼 하나로 되찾을 수 있는 ‘외부의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일부러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저장 버튼을 누르고 안심한다. 메모를 남겼으니, 사진을 찍었으니, 나중에 보면 되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저장한 것들은 종종 다시 꺼내보지 않는다.

이전에는 중요한 순간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되새겼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눈 대화, 잊지 말아야 할 다짐,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들은 기억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며 삶에 각인을 남겼다. 그러나 이제는 '기억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듯하다. 저장되었으니 더는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억을 붙잡기 위해 만든 기술이 기억을 놓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1. '기억하지 않음'은 무관심이 아니라 시스템의 선택이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덜 기억하는 건, 단지 관심이 줄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삶은 더 복잡해졌고, 처리해야 할 정보는 과거보다 수십 배 늘었다. 뇌는 계속해서 기억을 선택해야 하는 압박 속에 놓여 있다. 디지털 기술은 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등장했지만, 동시에 우리의 기억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제는 뇌가 아니라 기계가 우선적으로 정보를 저장한다. 우리는 습관처럼 사진을 찍고, 음성으로 메모하고, 문서를 스캔한다. 하지만 저장된 데이터는 종종 잊힌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기계가 기억을 대신해주기 때문에, 인간은 '기억하려는 의지' 자체를 잃어버린다. 기억이라는 행위는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해석의 과정이다. 우리는 한 사건을 떠올릴 때, 그때의 감정, 냄새, 대화의 뉘앙스까지 다시 불러온다. 이는 뇌의 복잡한 연상 작용이 작동한 결과다. 그러나 디지털 기록은 이런 연상을 대신하지 못한다. 사진은 장면을 남기지만, 감정은 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록의 양은 늘었지만, 기억의 질은 낮아졌다고 느끼게 된다. 중요한 건 기록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나만의 의미로 재구성하는 행위다. 그런데 이 행위가 사라지고 있다. 저장과 검색에 익숙해진 우리는 '직접 기억하는' 고유한 능력을 기술에 위탁하며, 점차 ‘기억하지 않는 인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2. 기억은 내면의 공간이고, 기록은 외부의 기호다


기억과 기록은 겉보기에는 유사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본질을 갖고 있다. 기억은 ‘내 안에 살아 있는 경험’이고, 기록은 ‘밖에 남겨둔 증거’다. 기억은 시간과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지만, 기록은 고정된 순간에 머무른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둘을 혼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진을 찍으면 그 순간을 잊지 않을 수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그 반대일 때가 많다. 우리는 사진을 찍는 순간, 경험에서 한 발짝 떨어지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야지’라는 감정보다 ‘이 장면을 어떻게 찍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경험이 기록을 위한 준비 단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 기록을 잘 보지도 않는다. 수천 장의 사진, 수백 개의 동영상, 수많은 메모와 음성파일은 데이터베이스 속에 파묻힌 채 잊힌다. 기록했기에 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도 익숙해져버렸다.

기억은 반복되는 감정의 소환이자, 자신에 대한 이해의 기반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외주화하고 있다. 내가 느낀 슬픔, 감동, 사랑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다. 디지털 기록이 감정을 포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진도 그날의 냄새와 공기, 마음의 떨림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억했다’고 믿지만 실은 ‘기록만 했다’는 사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기억은 여전히 인간 내면의 고유한 활동이다. 그것은 단순히 정보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3. 다시, 기억하려는 연습이 필요하다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더 현재에 무심해진다. 과거를 되짚는 힘이 사라지면, 미래로 나아갈 방향도 희미해진다. 기억은 단지 옛일을 떠올리는 기능이 아니라, 나의 삶을 해석하고 연결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억을, 어떻게 다시 꺼내야 할까? 우선 기록보다 기억을 우선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어떤 순간이 나에게 왜 중요한지를 질문해보고, 그 감정과 생각을 곱씹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꼭 사진을 찍지 않아도 괜찮다. 눈으로 본 그대로, 마음으로 느낀 그대로 머릿속에 담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기억하는 연습을 시작하면, 삶은 더 진하게 남는다. 또한 우리는 기록의 방식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조건 많이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의미 있게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감정은 말보다 글로, 어떤 기억은 영상보다 마음으로 남기는 게 더 깊을 수도 있다. 기억은 삶의 온도다. 기록은 그 온도를 재현할 수는 있어도, 대신 살아주지는 못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순간에 얼마나 몰입했고, 그 기억을 얼마나 내 것으로 만들었는가에 달려 있다.


기억은 삶을 다시 사는 일이고, 기록은 그 삶을 간직하려는 시도다. 문제는 우리가 이제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록했으니 괜찮다고, 사진이 있으니 안심된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기억을 놓아버린다. 하지만 잊지 않으려면, 오히려 기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정과 함께 떠올리고, 스스로 해석하고, 타인과 나누는 과정 속에서 기억은 비로소 살아난다. 기술은 도구일 뿐, 기억의 본질은 여전히 우리의 내면에 달려 있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했는데, 기록했으니 잊어도 된다고 믿는다’는 말은 슬픈 자기기만이다. 우리는 기록이 아니라 기억으로 존재한다. 다시, 기억하려는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나를 잃지 않는 길이고, 삶을 다시 온전히 살아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