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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오늘이 들어설 수 있을까

by winnie2725 2025. 4. 24.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오늘이 들어설 수 있을까. 오늘이 오늘일 수 있는 이유는 어제 덕분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을 직선처럼 생각한다.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다. 하지만 정말 시간이 그렇게 나란히 놓여 있는 걸까? 어쩌면 현재는 단순히 과거의 연장선일 뿐일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 내리는 결정, 바라보는 시선은 모두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서 비롯된다. 오늘이 '오늘'일 수 있는 이유는 어제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오늘이 들어설 수 있을까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오늘이 들어설 수 있을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낯선 방이라면 당황할 것이다. 나는 누구였지? 왜 여기에 있지? 어제의 기억이 없다면 오늘은 단지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일 뿐, 나에게 의미 있는 '하루'가 되기 어렵다. 인간은 하루하루를 쌓아가며 정체성을 형성한다. 기억은 과거를 단순히 되짚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갈 좌표를 제공한다. 그렇기에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과연 '오늘'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물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방식, 시간을 느끼는 방식,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과거를 잊은 채로 과연 오늘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을까?

 

1. 기억의 부재는 삶의 연속성을 끊는다


치매를 앓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종종 듣게 되는 슬픈 장면이 있다. 누군가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순간이다. 그것은 단지 정보를 잊은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고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인간은 기억을 통해 자신의 삶을 엮어 나간다. 오늘과 어제가 이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인가?

기억의 부재는 삶의 연속성을 끊는다. 단기적인 망각은 당혹스러울 뿐이지만, 장기적인 기억의 손실은 정체성 자체를 흔든다. 단순히 무언가를 잊은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첫사랑의 기억이 없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오늘의 선택은 무모해질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기억의 외주화’를 경험하고 있다. 사진은 클라우드에, 일정은 스마트폰에, 연락처는 앱에 저장된다. 우리는 마치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안을 스스로에게 건넨다. 하지만 그런 기술은 정보를 대신 기억해줄 뿐,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기억해주지 않는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현재가 낯설어진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느끼는 감정은 모두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기억이 끊어진 자리에는 공백이 생긴다. 그리고 그 공백은 점점 현재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2. 디지털 기억의 시대, 우리는 정말 '잊지 않는' 존재가 되었을까


이제 우리는 잊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록한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음성으로 메모를 남기며, 일상을 SNS에 올린다. 데이터는 쌓이고, 기억의 흔적은 넘쳐난다. 우리는 '잊지 않기 위한' 기술을 점점 더 고도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질문을 해보자. 그렇게 기록된 것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꺼내보고, 얼마나 자주 다시 느끼고 있는가?

구글 포토는 내가 5년 전 오늘 찍었던 사진을 다시 보여준다. 알고리즘은 친절하게 ‘그날의 추억’을 소환하지만, 문제는 그 추억이 나에게 얼마나 생생한가이다. 나는 그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장소의 냄새나 온도는 어땠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사진은 남았지만, 감정은 사라졌다. 기억이란 단순한 이미지의 저장이 아니라, 감정과 맥락이 얽힌 살아 있는 구조다. 디지털 기술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진폭까지 저장하진 못한다. 우리는 과거를 ‘보관’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능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오늘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어제의 감정을 되새기는 일이다. 그때 느꼈던 설렘, 두려움, 기쁨이 오늘의 선택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기억을 외주화하면서 우리는 그런 연결 고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디지털 기억이 증가할수록, 오히려 우리는 진짜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3. 기억 없는 오늘은 공허하고, 내일을 잇지 못한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오늘이 들어설 수 있을까? 어쩌면 대답은 ‘아니오’일지도 모른다. 기억 없는 오늘은 그저 시간의 틈새일 뿐, 나라는 사람의 삶을 채우지 못한다. 순간은 존재하지만, 맥락이 없다. 그리고 그 맥락 없는 오늘은 내일과 연결되지 않는다. 삶은 이어지는 것이지, 끊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기록하면서 정작 ‘기억하려는 태도’를 잃고 있다. 기억은 훈련이고, 습관이다. 어제의 나를 곱씹고, 과거의 실수에서 배우며, 한 장면 한 장면을 마음으로 되새기는 일이 기억을 만든다. 하지만 모든 것을 쉽게 기록할 수 있는 지금, 그런 과정은 생략되고 만다. 오늘을 진짜 나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기억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 혹은 누군가와 그날의 대화를 되새기며 감정을 나누는 것. 그런 행위가 모여 기억을 만들고, 기억은 오늘을 오늘답게 만든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로운 정보나 기술이 채워질 수는 있겠지만, 그 자리를 완전히 대신하긴 어렵다. 인간의 정체성은 단지 ‘정보’가 아니라, 그것을 기억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에 있다. 그 능력이 살아 있어야 오늘은 단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삶의 일부로 남는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오늘이 들어설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결국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기술은 정보를 잊지 않게 도와줄 수 있지만, 나를 잊지 않게 해주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다.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다. 그 기억들이 모여 오늘의 내가 되었고, 오늘의 나는 내일을 만들어갈 토대가 된다. 그러니 기억을 지키는 일은 단지 추억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나의 현재와 미래를 지켜내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간다. 그러나 오늘이라는 시간에 진정한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면, 기억하려는 연습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다시금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오늘은 그렇게, 어제의 기억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