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낯선 게 아니라, 배제당한 것이다. 노인과 기술 사이의 거리를 만든 건 누구인가.
현대 사회는 기술의 발전을 진보의 상징으로 여긴다. 스마트폰 하나로 식사를 주문하고, 병원 진료를 예약하며, 교통편까지 해결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런 기술의 편리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노인 세대는 점점 기술과 멀어지는 존재로 남아가고 있다.
문제는 단지 노인이 기술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데 있지 않다. 기술을 배울 기회가 부족했거나, 새로운 기기를 낯설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보다는 기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것이 사회에 적용되는 방식에서 노인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다. 디지털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느리다’고 평가하거나, ‘적응하지 못한 사람’으로 단정짓는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설계하고 배포하는 과정에서 노인을 포함한 다양한 사용자층을 배려하지 않았던 사회 구조의 결과다. 기술은 낯설어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기술 환경에서 밀려난 것이다.
1. 디지털 격차는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많은 사람이 노인이 기술을 거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부라기보다 ‘배제’에 가깝다. 인터넷이나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비용, 학습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젊은 세대는 자연스럽게 학교와 사회에서 디지털 기술을 접하며 익숙해지지만, 노인들은 그런 환경에 속하지 않았기에 접근의 문턱이 훨씬 높다.
예를 들어, 병원 예약 시스템이 100% 모바일 앱으로 전환되었을 때, 노인은 스마트폰이 없어 진료를 받기 어렵게 된다. 식당에 키오스크만 설치된 상황에서는 메뉴를 고르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이러한 장면은 일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무조건적으로 빠르고 효율적인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있지만, 그 속에 놓여진 사람들의 다양성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구조는 노인의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복적으로 “이걸 못 하시면 안 돼요”, “젊은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같은 말을 듣게 되면, 스스로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게 된다. 그들은 점점 스스로를 ‘뒤처진 존재’라고 느끼고, 사회와의 연결 고리를 약하게 만든다. 기술을 배우고 싶어도 이미 눈치와 압박, 무언의 배제가 앞서 있는 셈이다.
2. 기술은 누구를 위해 설계되고 있는가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은 누가 설계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누구를 위해 설계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진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디지털 기기와 플랫폼은 젊은 세대의 사용 방식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속도와 효율, 직관성과 감각적인 디자인이 중심이 되고, 노인의 시력, 반응 속도, 정보 처리 방식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노인은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술에 의해 소외당하는 존재가 된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을 더 연결시키고 평등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오히려 ‘사용할 수 없는 자’를 자연스럽게 배제해버리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기술은 일상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는데, 그 일상에서 배제당한다면 이는 단순한 불편이 아닌 존재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사용성 테스트나 기술 개발 과정에서 노인의 피드백이 반영되는 경우는 여전히 적다. 노인을 위한 기술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기기들조차 ‘보조’ 또는 ‘의료용’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 역시 하나의 ‘주체적인 사용자’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관점은 부족하다. 기술이 노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이 기술에 맞춰야 하는 현실이 지속되는 한, 배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3. 공존의 기술을 향한 첫걸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노인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 전체가 기술의 방향성을 재고해야 한다. 기술은 사람을 위한 것이며, 모든 세대를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속도와 혁신만을 추구하는 기술은 일부만의 편리함일 수 있다. 기술은 공공성과 포용성, 접근성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한다. 노인을 위한 기술 교육도 단순히 ‘기능 습득’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들이 왜 그것을 배워야 하는지, 배웠을 때 무엇이 바뀌는지를 함께 설명해주는 맥락이 필요하다. 기술은 무조건 배워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선택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지가 열려 있는 환경은 사회가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존중’이다. 기술을 잘 다룬다고 해서 더 우월한 것도 아니고,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무능한 것도 아니다. 기술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기술이 충분히 손을 내밀지 않았던 것이다. 공존을 위한 기술은 바로 그 손을 다시 내미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기술이 낯선 게 아니다. 기술은 그저 너무 빠르게, 너무 높게만 진보했고, 그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을 뒤로 남겨두었다. 노인은 거부하지 않았다. 단지 기술이 그들을 초대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늦은 이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을 수 있도록 기술의 속도를 조율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야 할 질문은 이렇다. ‘기술이 가능한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가능한가’이다. 기술은 단지 기능이 아니라 관계이며,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여야 한다. 그 다리는 튼튼하게, 그리고 낮게 놓여야 한다. 노인은 기술에 적응하지 못한 존재가 아니라, 기술이 함께 나아가야 할 동반자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그 다리 위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기술이 우리에게 어떤 얼굴로 다가오는지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