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에서 노인은 왜 점점 투명해지는가. 기술은 노인을 지나쳐간다.
디지털 전환은 마치 자연재해처럼 거스를 수 없는 흐름처럼 보인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밥을 주문하고, 키오스크로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은행 업무는 앱으로 처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세계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열려 있는가? 특히 노인에게 디지털 세상은 ‘기회’가 아니라 ‘장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기술은 원래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기술이 특정 세대의 기준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그 결과 많은 노인이 그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익숙한 인터페이스와 언어, 상징들이 노인에게는 낯설고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 창구가 줄어들고 키오스크만 남게 되었을 때, 기술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나쳐간 셈이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불편함’이라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디지털 세계에서 노인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사회 전체에서 그들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기술은 눈에 보이는 것 같지만, 그 기술이 기반이 된 세계에서 ‘보이지 않게 되는 사람들’은 실제로도 점점 사회적으로 투명해진다.
1. 정보가 흐르는 곳에 노인의 자리는 없다
디지털 세상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정보의 흐름 속에서 노인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SNS에서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와 유행, 밈이 중심이 되고, 뉴스는 모바일 최적화로 바뀌며, 관공서나 병원까지도 앱 중심의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문제는 단지 정보를 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노인이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채' 사회의 흐름에서 한 발씩 밀려난다는 점이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중심이 되는 시대에는 연결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화 대신 메신저, 직접 만남보다 온라인 회의, 우편보다 이메일로 세상이 운영될 때, 디지털에서 소외된 노인은 그저 ‘정보 바깥’에 놓인 채 살아가게 된다.
노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술의 진입장벽은 생각보다 높고, 그 진입장벽을 넘기 위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요즘은 다 앱으로 하잖아요", "그 정도는 배워야죠"라는 말은 그들을 더 고립시키고, 스스로 '난 이제 필요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
2. 투명한 존재는 언제 지워질지 모른다
사회에서 '투명하다'는 말은 단순히 눈에 띄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는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지워진 상태를 말한다. 마치 어떤 공간 안에 있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누구도 다가가지 않는 그런 상태 말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노인의 존재가 바로 그렇다. 존재는 하되, 시스템은 그들을 인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인증이 없으면 금융 거래를 할 수 없고, 코로나 시기에는 QR 체크인이 필수가 되었을 때, 그 기술을 다룰 줄 모르는 노인은 어디에도 접근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불편한 문제가 아니다. 생존과 직결되는, 본질적인 문제다.
이렇게 배제된 상태는 점차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이어진다. 도시에서 버스를 타는 노인,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노인, 병원에서 길을 묻는 노인은 점점 ‘불편한 존재’가 된다. 너무 느리게 움직이고, 설명을 반복해서 들어야 하고, 시스템을 멈추게 만든다는 인식이 쌓이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피하고 무시한다. 기술을 중심으로 재편된 사회 속에서, ‘투명한 존재’가 된 노인은 어느 순간 사회적 기억에서조차도 지워질 위험에 처해 있다.
3. 투명함을 벗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노인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의 태도다.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 속도, 표현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뒤처진 것'으로 보는 시선을 바꾸는 것이 먼저다.
기술은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은 사람을 닮아야 하고, 모든 사람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일부만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혁신이라기보다 또 다른 차별이 된다. 기술은 노인을 위한 보조도구가 아니라, 그들도 당당히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상의 도구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빠름’과 ‘편리함’만을 기준으로 삼는 사회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느린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기술은 결국 누구에게도 따뜻한 기술이 될 수 없다. 진정한 기술은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는 기술이며, ‘투명한 존재’를 다시 명확히 보여주는 기술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노인이 점점 투명해지는 이유는 그들이 기술을 거부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그들을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투명함을 벗기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질문이며 실천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아주 사소한 관심과 존중, 그리고 느림을 기다려주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술로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그 기술이 누군가를 보이지 않게 만들고 있다면, 우리는 진정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투명해지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졌다는 뜻이다. 이제는 더 넓게, 더 깊게, 그리고 더 천천히 바라볼 때다. 디지털 세상에 노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기술은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