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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앞에서 멈춘 노인, 그 순간의 이야기

by winnie2725 2025. 5. 1.

키오스크 앞에서 멈춘 노인, 그 순간의 이야기. 편리함 뒤에 남겨진 사람들.
요즘 우리는 어디에서나 키오스크를 만난다. 햄버거 가게, 카페, 음식점, 심지어 병원과 관공서까지. ‘비대면’, ‘무인’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더 많은 공간에서 사람이 아닌 기계가 주문과 결제를 대신한다. 누구에게나 간편해 보이는 시스템이지만, 이 편리함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멈춰 서 있는 노인들이 바로 그렇다.

 

키오스크 앞에서 멈춘 노인, 그 순간의 이야기
키오스크 앞에서 멈춘 노인, 그 순간의 이야기

 

어느 날, 패스트푸드점에서 마주친 한 노인의 모습이 기억난다. 주문을 하려던 노인은 키오스크 앞에 서서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메뉴는 화려한 이미지와 버튼으로 가득했고, ‘원하는 메뉴를 터치하세요’라는 문구가 크게 떠 있었다. 하지만 화면 앞에 선 노인은 무엇을 눌러야 할지 알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는 듯했지만, 모두 자신의 주문에 바빠 그 순간을 지나쳤다.

이런 장면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키오스크는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급속히 확산되었지만, 그 속도는 누군가를 뒤에 남겨두고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다. 기술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노인들은 점점 더 낯선 공간에 서 있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

 

1. 멈춰 선 노인, 멈춰진 시간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는 노인의 모습은 단순한 ‘불편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시간이 멈춰버린 순간이기도 하다. 화면은 계속해서 ‘다음’을 요구하지만, 노인의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화면이 안내하는 흐름과 노인의 속도는 서로 만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문다. 노인의 입장에서는 단 한 끼의 식사가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렸다. 무엇을 눌러야 하는지,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알 수 없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돌아오는 건 “여기서 먼저 메뉴를 선택하셔야 해요”, “QR코드가 있으세요?”라는 낯선 단어들뿐이다. 그 순간 노인은 자신이 ‘느린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고 노인들이 변화에 무조건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다. 많은 노인은 자식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사용법을 묻고, 따라잡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기술은 너무 빠르게 바뀌고, 새로운 시스템은 더 복잡해진다. 변화에 익숙한 세대는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 세대가 겪는 속도감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키오스크 앞에서 멈춰 서 있는 노인의 시간은 느리다. 하지만 느린 시간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느린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사회다.

 

2.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배제


키오스크가 도입될 때 가장 많이 강조되는 것은 ‘효율성’과 ‘편리함’이다. 주문 대기 시간이 줄어들고,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으며, 소비자는 더 빠르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효율성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노인은 효율성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키오스크 시스템은 그들을 ‘비효율적인 사용자’로 만들어버린다. 한 사람이 빠르게 주문을 마치는 동안, 노인은 화면 앞에서 몇 분을 서성인다. 뒤에서 기다리는 시선은 부담이 되고, 결국 자리를 비켜주거나, 아예 가게를 떠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노인은 스스로를 “폐를 끼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더 이상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방해가 되는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 끼의 식사, 한 잔의 커피, 작은 일상이 기술이라는 장벽 앞에서 좌절되는 순간, 노인은 사회에서 자신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경험이 반복적이라는 점이다. 키오스크뿐만 아니라, 병원 예약, 은행 업무, 각종 공공 서비스까지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노인의 일상 전반이 기술의 언어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새로운 시스템에 익숙해지려는 노력보다, 자연스럽게 소외되는 경험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3. 다시 ‘사람’을 만나는 공간을 위해


키오스크 앞에서 멈춰 서 있는 노인의 모습을 보며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한 기술을 만들고 있는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느리게 걸을 수 있는 사람을 배려할 공간은 남아 있는가?

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다. 더 편리한 삶을 위해, 더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시스템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사람들을 배제하고 있다. 노인은 단지 기술에 익숙하지 않을 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동등하게 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인에게 기술을 가르치자’라는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시스템을 설계할 때부터 다양한 속도와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모든 매장에 무인 시스템만이 아닌, 사람이 응대할 수 있는 창구를 함께 두는 것. 설명이 필요 없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느린 속도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 이런 작은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누군가의 하루를 위해 잠깐의 기다림을 허락하는 사회, 불편함을 이해하려는 시선이 있는 사회라면, 키오스크 앞에서 멈춰 선 노인의 시간도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다. 기술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그 다리 위에서 모두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는 지금 다시 질문해야 한다.
키오스크 앞에서 멈춰 선 노인의 뒷모습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기술이 가져온 편리함과 효율성 뒤에, 누군가는 여전히 서성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간편한 일상’은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 되고, 때로는 ‘고립의 순간’이 된다. 디지털 시대는 연결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연결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기술의 실패다. 진정한 연결이란 속도의 동기화가 아니라, 마음의 공명에서 시작된다. 느린 걸음이든 빠른 클릭이든,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방식으로 일상이 설계되어야 한다. 노인의 느린 터치 하나에도, 세상은 반응해야 한다. 기술은 결국 사람을 닮아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함께 걸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는 디지털 사회는 노인의 현재를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미래의 노인이 된다.

결국, 이 이야기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키오스크 앞에 선 누군가의 멈춤을 이해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