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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한 게 아니라 배워볼 기회조차 없었다

by winnie2725 2025. 5. 3.

거부한 게 아니라 배워볼 기회조차 없었다. 노인과 기술, 오해의 간극.
“노인은 기술을 싫어해.”
이 말은 언제부턴가 사회 전반에 퍼진 일종의 고정관념처럼 자리 잡았다. 은행에서 창구 업무 대신 앱을 요구할 때, 식당에서 키오스크를 마주할 때,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너무 쉽게 “이해 못 하는 세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사실 많은 노인들은 기술을 '거부'한 적이 없다. 그보다는 기술이 빠르게 바뀌는 동안,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디지털 기기는 어느 순간 일상의 전부가 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설명 없이도 기계를 다루는 전제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노인들은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 ‘복잡한 절차’, ‘누르기 어려운 화면’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거부한 게 아니라 배워볼 기회조차 없었다
거부한 게 아니라 배워볼 기회조차 없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학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이들에게 “왜 못하냐”고 묻는 것은, 외국어를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유창하게 말해보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1. 디지털 환경은 누구를 위해 설계되었나


현대의 디지털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익숙한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빠르게 반응하는 터치스크린, 작고 간결한 아이콘, 생략된 설명. 모두가 디지털 리터러시에 익숙하다는 전제를 깔고 만들어진 환경 속에서, 노인들은 늘 ‘낯선 사용자’가 된다.

예를 들어 키오스크는 젊은 세대에게는 단순하고 편리한 장치지만, 노인에게는 화면을 터치하는 위치조차 알기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초기화되어버리는 불친절한 구조를 갖고 있다. 설명은 생략되었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그야말로 ‘비기술 사용자’는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런 설계는 기술이 삶을 편리하게 만든다는 본래 목적을 잊게 만든다. 기술은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디지털 환경은 오히려 특정 집단만의 언어와 습관에 맞춰져 있어, 나머지를 자연스럽게 배제하고 있다. 우리는 이 상황을 ‘적응의 실패’가 아니라 ‘설계의 편향’으로 볼 필요가 있다.

 

2. 배우고 싶지만 배울 수 없었던 시간들

많은 노인들은 여전히 배우고 싶어 한다. 스마트폰을 들고 손주에게 어떻게 쓰는지 물어보거나, 동사무소의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배움은 단순히 ‘정보를 주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반복적으로 실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지역마다 교육 기회가 고르지 않고, 교육 방식은 너무 일괄적이다. 하루에 두세 시간만에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라고 한다면, 이는 오히려 좌절만 안겨준다. 또한, 나이든 사람일수록 “이거 잘못 누르면 고장 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있다. 젊은 세대는 기기를 만지며 스스로 익히지만, 노인들은 실수를 두려워해 처음부터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일상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보는 경험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습득한 기술도 금세 잊어버리기 쉽다. 이는 학습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노인들은 정말 기술을 거부했는가, 아니면 배워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가?

 

3. 함께 가는 기술, 함께 사는 사회


기술은 원래 인간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도구다. 그렇다면 기술은 가장 먼저 불편함을 겪는 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특히 노인과 같은 디지털 소외 계층에게는 ‘기술이 친절해야 한다’. 이해하기 쉬운 인터페이스, 설명이 반복되는 구조,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 등은 단순한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포용의 시작이다. 또한 우리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교육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는 단지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다. 노인들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존엄과 자율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디지털을 배우는 것은 기술을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와 연결되고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기술을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로 두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의 미래를 고립시키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결국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구축하는 디지털 사회의 모습은, 곧 우리의 미래가 된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배워볼 기회’는 모든 세대를 위한 약속이어야 한다.

기술에 친숙한 젊은 세대가 노인들에게 등을 돌리는 사회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사회다. 우리는 기술을 배운 사람들과 배우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놓인 간극을 좁혀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연대의 문제다. 노인을 위한 기술은 노인만을 위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가 나이 들었을 때 누릴 수 있는 공공의 안전망이 된다.

그러니 오늘 하루, 우리가 키오스크 앞에서 주저하는 노인을 만났다면 ‘왜 못 하시지?’ 대신, ‘어떻게 도와드릴까?’라고 묻는 용기를 내보자. 그것이 기술을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만드는 가장 작은 출발점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역시 누군가의 작은 설명과 배려 속에서 다시 배우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덧붙이자면,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질문은 이 사회가 누구를 중심에 두고 설계되었는가이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유리하고, 누군가에겐 낯설다. 그렇기에 사회는 기술을 도입할 때마다 반드시 물어야 한다. "이 기술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가?", "이 환경은 약자에게도 친절한가?" 하는 질문들이다. 디지털 전환이 가져온 효율과 편리함은 분명하지만, 그 속에서 보이지 않게 사라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노인은 그 대표적인 예다. 눈에 띄지 않게 밀려나고, 무언의 방식으로 사회에서 ‘퇴장’ 당하는 그 현실을 우리는 이제 직시해야 한다.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기술,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술의 설계자와 사용자 모두가 ‘함께’라는 가치를 되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