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나의 일부가 아니라, 나의 전부다. 철학자 존 로크는 인간의 자아를 ‘기억’에 의존한다고 봤다.
우리는 단순히 이름, 생일, 과거 사건을 기억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 기억에 담긴 감정, 그때의 냄새와 온도, 그 상황에서의 나의 판단과 가치관이 모여 현재의 ‘나’를 만든다. 예를 들어보자.
유년 시절 부모님과 함께 걷던 골목길, 그 길 위에 쌓인 낙엽의 냄새와, 겨울바람에 눈물이 찔끔 났던 그 순간의 기억은
지금 내가 가을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영향을 준다.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졌던 카페, 시험에서 떨어지고 걸었던 어두운 밤거리.
이런 기억들은 내게 특정한 감정을 안겨주고, 그 감정은 오늘의 나를 만든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해석된 삶’이다.
우리는 기억 속에서 삶을 되새기고, 그 되새김을 통해 자신을 이해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 중요한 과정을 점점 기계에게 맡기고 있다.
1. 디지털 외주화 - 기억을 맡기고 뇌를 비우다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를 뇌의 확장처럼 사용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일정 관리에서 시작됐다.
“엄마 생신 11월 4일”, “회의 14:00, 줌 링크 첨부”
이제는 훨씬 더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부분까지 디지털에 맡긴다. 메모 앱에는 내 감정이, 구글 포토에는 내 성장기가,
SNS에는 나의 모든 관계와 사회적 정체성이 저장되어 있다. 더 이상 우리는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거 나중에 검색하면 되지.”
“사진 찍어 놓자, 나중에 기억 못 할 수도 있으니까.”
이런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잊는다. 뇌는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그 정보를 깊게 저장하지 않는다. 즉, 우리는 기억을 외주화하면서 스스로 ‘기억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디지털 기기들은 점점 더 정교하게 나를 기억한다. 내가 어디를 다녔고, 무엇을 먹었고, 어떤 영화를 봤고, 어떤 음악에 오래 머물렀는지. 심지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정보들은 ‘감정 없는 기억’이다.
그 순간을 내 몸이, 내 마음이, 내 눈이 어떻게 느꼈는지는 저장되지 않는다.
2. 클라우드가 조립하는 ‘또 다른 나’
‘디지털 자아’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우리가 온라인에서 남긴 기록들은 어떤 패턴을 만들고, 그 패턴은 알고리즘에게 ‘이 사람은 이런 취향과 성향을 가진 존재’라는 판단을 내리게 한다.
예를 들어, 내가 3일 연속 우울한 노래를 들었다고 하자.
스트리밍 서비스는 나에게 슬픈 음악을 추천한다. 몇 번 클릭하면, 이제 ‘나는 우울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
이 데이터는 광고에도 반영되고, 내 피드는 점점 더 특정한 색을 띠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클릭한 것에 따라 점점 더 특정한 인물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동시에 선택을 유도당한 결과일 수도 있다.
클라우드는 끊임없이 나를 기억하지만, 그 기억은 나의 ‘진짜 나’일까? 감정과 맥락을 제거한 데이터의 조각들이 모여 만든 ‘또 다른 나’일 뿐이다.
무서운 건 이 디지털 자아가 점점 더 내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SNS에서 보이는 모습, 내 검색 기록, 내가 쓴 글들이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나에 대한 인식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내가 실제 생활에서 취하는 태도도 바뀐다.
나는 클라우드 속 내가 되고, 클라우드 속 나는 점점 더 나를 정의한다.
3. 기억을 외주화한 인간은 인간일 수 있을까
기억을 맡기고 우리는 편리함을 얻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은 인간성을 조금씩 희생한 대가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망각하고, 오해하고, 왜곡하면서도
감정과 함께 기억을 품기 때문이다. 기계는 절대 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 속에서 성장한다.
때로는 기억을 덜어내야, 더 나아갈 수 있다. 기억은 단순히 ‘남기는 일’이 아니라, ‘해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남긴다. 모든 사진, 모든 메시지, 모든 일정이 기록되고 저장된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그것을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다. 기억은 무수히 많지만, 그것이 나를 만든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질문은 남는다.
기억이 나를 만든다면, 지금 이 순간도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있는 나는 과연 나인가?
혹은, 클라우드가 만들어가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기억의 총합이 아니라, 기록의 총합일 뿐일까?
기억이라는 인간의 특권. ‘기억한다’는 건 단지 정보를 저장하는 게 아니다. 그건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는 일이고,
나라는 존재를 납득하는 과정이다. 기계는 기억하지만, 감정을 품지 않는다. 기계는 저장하지만, 해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계는 ‘왜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는다.
인간은 묻는다.
왜 이 장면이 내게 소중한지, 왜 이 말이 오래 남는지, 왜 어떤 기억은 아프도록 또렷한지를.
기억은 인간의 고유한 특권이다. 클라우드가 대신할 수 없는.
그러니 다시 질문해보자.
기억이 나를 만든다면, 클라우드는 누구를 만드는가? 그리고, 나는 그 존재가 되고 싶은가?